무조건 50%이상 감축… ‘온실가스 청구서’ 온다

유승혁 기자
수정 2025-11-07 00:58
입력 2025-11-07 00:58
정부, 2035 온실가스감축목표 제시
1안 50~60%·2안 53~60%로 좁혀업계는 부담 가중 우려 48% 요구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2018년 대비 ‘50~60%’ 또는 ‘53~60%’ 두 가지 안으로 압축됐다. 현행 ‘2030년 40% 감축’보다 10~20% 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상한선(60%)은 이미 정해졌고, 쟁점은 하한선이다. 감축 하한을 50%로 둘지, 53%로 높일지에 따라 기업의 감축 설비 투자 규모, 전기요금·제품 가격의 상승폭까지 달라질 수 있다. 단 3% 포인트 차이지만 산업 경쟁력을 흔들 수 있는 무게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청회를 열고 두 가지 안을 공개했다. 정부는 오는 10일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심의, 11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감축 목표를 확정하고 유엔에 제출할 예정이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공청회에서 “시민사회는 61~65% 감축을 요구했고, 업계는 48% 감축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호소했다”며 “정부는 상반된 의견 속에서 균형점을 찾고자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9월 ▲48%(산업계 요구) ▲53%(연평균 감축 기준) ▲61%(국제사회 권고) ▲65%(기후단체 요구) 등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 뒤 여섯 차례 토론회를 거쳐 현재의 두 안으로 좁혔다.
하한이 어느 쪽이든 50% 이상 감축은 확정적이다. 이는 곧 산업계의 부담 증가를 의미한다. 전력 부문에서는 급격한 석탄 발전 축소가 불가피하며, 수송 부문에서는 전기차·수소차 전환이 빨라진다.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목표를 달성하려면 탄소 감축 설비와 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이는 생산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산업계는 “현실을 무시한 과도한 목표”라고 비판했다.
전력 부문의 감축 목표는 특히 가파르다. 하한이 50%로 설정되더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2억 8300만t에서 2035년 8830만t으로 약 70% 줄여야 한다. 지난해 배출량(2억 1830만t)과 비교하면 10년 안에 절반 이상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수송 부문 역시 50% 이상 감축해야 하며 하한이 53%로 높아질 경우 감축률은 60%를 넘는다.
감축 목표는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기업 비용으로 직결된다. 기업은 배출량을 할당받고 기준보다 더 배출하면 초과분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NDC에 따라 할당받는 탄소 배출량이 줄어들면 배출권 비용이 증가하고 이는 전기요금 인상 압력으로 연결될 수 있다. 결국 기업 부담이 소비자가격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감축 기술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목표를 급격히 높이면 생산비가 상승하고 전기요금과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결국 고용 감소와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저탄소 제품 생산 인센티브’, ‘다배출기업 탄소 감축 설비 지원’ 등 일부 지원 방향이 소개됐지만 예산 규모·재원 조달 방식·시행 일정은 제시되지 않았다.
반대로 환경단체는 감축 목표가 기후위기 대응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반발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려면 61% 감축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이번 정부안에는 이 기준이 반영되지 않았다. 최창민 플랜1.5 변호사는 “하한선인 50% 또는 53%가 정부의 감축 의지를 보여 주는 수치”라며 “정부가 제시한 네 가지 안 중 최악과 차악만 남겼다”고 비판했다.
절차적 정당성 문제도 제기된다. 정부는 유엔 권고 제출 기한(9월)을 두 달 넘겨 제출할 예정이며 첫 토론회를 9월 중순에야 열었다.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정이 불과 두 달 만에 졸속으로 추진됐다”며 “새 정부 출범 시점(6월)을 고려하면 더 일찍 준비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법적 논란도 남는다. 헌법재판소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고 미래 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전제로 2018년부터 매년 같은 비율로 감축하면 2035 NDC는 53%가 돼야 한다. 따라서 하한선 50% 안은 초기 감축을 미루고 나중에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이 돼 헌재 요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준원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첫 번째 안(50~60%)은 헌재의 요구를 충족하는지 상당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유승혁 기자
2025-11-0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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