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안 되면 죽느냐 사느냐 직면… ‘환율 주권’ 정책의 중심 돼야” [월요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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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웅 기자
황비웅 기자
수정 2025-10-26 18:29
입력 2025-10-26 18:29

[묻고 답하고 통하다] 강만수 前기획재정부 장관

1997·2008년 위기 뒤 얻은 교훈
관세·통화전쟁 때 아군 희생 불가피
환율·경상수지 흑자로 힘 쌓아놔야
세율 인하·R&D 투자로 고용 확대를
한미 관세협상 전망은
美 전 세계 상대, 우리만 봐 주지 않아
통화스와프 체결 때도 공정을 어필
트럼프 철학 이해도 따라 협상 좌우
부동산 폭등 근본 해법은
종부세 등 보유세는 근거 없는 몰수
그린벨트 전면 해제로 공급 늘리고
교육 개혁 통해 집값 뛴 원인 해소를
최근 한국 경제는 저성장 구조 고착화, 부동산 가격 폭등과 가계 부채 위기, 미중 패권 경쟁 등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정 속에 놓여 있다. 한미 무역 협상과 그로 인한 환율 급등 우려 등 대외 경제 변수에 대한 민감도가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현재 부영건설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강만수(80)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두 차례의 국가적 위기 당시 한국 경제정책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로 공유할 경험이 적지 않다.강 전 장관은 공직 초기에는 부가가치세 도입과 금융실명제 실무를 주도했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재직하면서는 금융감독·중앙은행 제도 개편 등에 참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후보의 대선 경제공약인 ‘747(연평균 7% 성장, 10년 뒤 1인당 GDP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 공약’을 설계해 ‘MB노믹스’의 설계자로 불리며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았다. 위기 상황에서 대규모 감세, 확대 재정, 고환율 정책 등을 추진하며 성장 중심의 경제 철학을 펴 나갔지만 동시에 ‘부자 감세’, ‘강(强)만수노믹스’ 등 비판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한국은행, 금융위원회와 금리·환율 노선 갈등을 겪었고 이후 산업은행장 재직 시 불거진 사법적 고초로 4년 8개월간의 감옥살이를 겪었다. 2022년부터 소설가로 변신해 지난 8월 자전적 소설집 ‘최후진술’을 출간했다.

강 전 장관은 지난 21일 부영빌딩 14층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대외 균형, 즉 경상수지 흑자가 없으면 경제 자체가 존립 불가능하다”면서 환율 주권을 강조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부동산 폭등 문제에 대해선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는 근거가 없는 몰수 제도”라고 비판한 뒤 “세율을 인하하고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해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그린벨트 지역을 전면 해제하며 도시 농지까지 개발해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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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1일 서울 중구 부영빌딩 집무실에서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 및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현재 부영건설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홍윤기 기자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1일 서울 중구 부영빌딩 집무실에서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 및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현재 부영건설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홍윤기 기자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두 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얻은 핵심 교훈은.

“두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확인한 것은 환율 주권의 문제다. 지금까지 한국은행이나 경제학자들이 주장해 온 것처럼 환율을 시장에만 맡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환율은 주권 행사로 봐야 한다.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대외 균형, 즉 경상수지 흑자가 없으면 경제 자체가 존립 불가능하다. 투기를 노리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위기는 올 수밖에 없다. 위기가 오면 관세전쟁과 통화전쟁 두 가지가 일어나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힘을 쌓아야 하며 환율 주권과 경상수지 흑자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고환율 정책을 추진해 물가가 폭등하고 서민 경제에 타격을 줬다는 비판이 컸는데.

“(목소리가 커지며) 전쟁은 아군의 희생 없이 수행할 수 없는 법이다. 내가 외환위기를 겪으며 염두에 둔 것이 ‘야전사령관은 야전병원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부하의 희생을 너무 염두에 두면 전쟁 자체가 수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계비 지출 증가나 해외 송금액 증가 같은 고통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수출이 안 되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에 직면한다. 수출의 결정적 변수는 환율이며, 따라서 모든 정책의 중심은 환율이 돼야 한다.”

-‘위기보다 한은 및 경제학자들과의 싸움이 더 힘들었다’고 했던 말의 의미는.

“내 정책에 가장 반대한 세력은 한은과 국내 경제학자들이었다. 원래 외국과의 전쟁보다 내전이 더 잔인한 법이다. 한은법 제1조의 목적이 물가 안정에 있기 때문에 생리적으로 고금리를 선호하며 환율이 떨어지는 것을 선호한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경제 전체를 고려하는 정부 입장과 처음부터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 경제학 박사 118명이 내 정책이 틀렸다며 성명서를 발표한 적도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학은 기술적으로 대외 부채에 문제가 없고 환율이 절상돼야 유리한 경우가 많아 우리와 근본적으로 개념이 다르다. 당시 ‘정부가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는 사실을 한은법 제92조를 들어 명확히 했다.”

-현재 한은의 통화정책은 어떻게 보나.

“현재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심한 상황에서도 한은이 저성장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상당히 적극적으로 노력해 왔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통화량(M2)을 보면, 과거 재무부 국장 시절(1988~199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통화량이 40%였는데 지금은 GDP 대비 180%가 됐다. 세계적으로 통화가 과잉 공급돼 있다는 의미다. GDP가 100인데 돈이 180이라면, 나머지 80%는 투기 거품이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제조업 등 산업 대신 부동산으로 돈이 몰리면서 주택 가격 폭등이 일어난 것이다.”

-‘증세를 위한 감률’ 정책을 주장했는데 지금도 유효한가.

“동서고금의 재무부 장관은 눈만 뜨면 어떻게 해야 세금을 많이 받느냐를 궁리하는 자리다. 아무리 세율을 올려 봐야 세입은 GDP의 20%를 넘기지 못한다. 세율을 올리면 결국 경제가 쪼그라들고 세금도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감률 정책은 세금을 많이 받기 위한 방법이다. 세금을 내린 만큼 기업은 투자 재원이, 개인은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 장기적으로 경제가 성장한다. 단기적으로는 차질이 있을 수 있으나, 정권과 상관없이 감률 정책을 쓰는 것이 옳은 정책이다.”

-2008년 당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300억 달러 규모)이 회자된다. 한미 무역 협상을 지켜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외 협상에서 우리가 미국에 대해 오해하는 점이 많다. 우리는 미국을 6·25전쟁 때 피를 나눈 우방이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협상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사정을 봐 주면 외교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당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할 때도 결정권을 쥔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와 로버트 루빈 전 재무부 장관을 찾아가 설득했다. ‘너희(미국)를 위해서 통화 스와프를 하자. 너희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는데,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호주에는 통화 스와프를 해 주고 우리에게 안 해 주는 것은 페어(fair)하지 못하다’고 했더니, 가이트너와 루빈이 이 점을 인정해 빠르게 협상이 타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도 철학과 원칙은 분명히 있는 걸로 보인다. 그 철학과 원칙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이해하느냐가 협상을 얼마나 빨리 끝낼 수 있는지를 좌우한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에 대해 ‘세금이라는 이름을 빌린 정치 폭력이며, 민주국가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될 몰수 제도’라고 비판했는데.

“종부세는 조세 이론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첫째, 보유세는 지방정부의 서비스 비용(Service Charge)이기 때문에 지방세가 돼야 한다. 둘째, 보유세는 중과하면 안 되고 유통세(거래세)는 중과해도 된다는 것이 재정학 이론이다. 셋째, 종부세는 이름부터 잘못됐다. ‘종합부동산세’가 아니라 ‘고가 아파트세’나 다름없다.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땅이나 빌딩, 주식, 미술품 같은 다른 재산은 왜 빼나. 월급쟁이가 평생 벌어 아파트 한 채 샀는데, 정부 실정 때문에 가격이 올라간 것을 가지고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몰수 제도에 가깝다. 종부세는 조세 원칙과 전혀 맞지 않는 정치 폭력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부동산 폭등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은.

“부동산은 글자 그대로 부동(不動)해야 하며, 유통을 시장에 맡기면 안 된다. 해결책은 정부가 책임지고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핵심은 택지 공급인데, 그린벨트의 비(非)그린 지역을 전면 해제하고 도시에 있는 농지까지 개발해야 한다. 그린벨트라는 건 지구상 어느 나라에도 없는 잘못된 제도다. 젊은 청년들을 위해서는 내가 ‘보금자리 주택’이라고 이름 지었던 것처럼, 정부가 주문 주택 식으로 필요한 위치와 평형을 책임지고 지어 줘야 한다. 또한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적했듯이 고교 평준화 폐지 등 교육 개혁을 통해 주택 가격 상승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고착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타개하려면.

“저성장은 투자가 안 돼서 발생한다. 투자를 확대하려면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세율을 인하하고 R&D에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 내가 장관 시절 가장 과감한 정책을 했던 것이 R&D 지원이다. 예산의 13번째였던 R&D 항목을 첫 번째로 올리고, 법인세를 세 번 감면해 주는 ‘삼중 공제’를 단행했다. R&D 투자 준비금(매출액의 3%까지)을 비용으로 인정해 과세 표준에서 빼 주고, 투자 금액의 10%를 세액공제하며, 인건비까지 포함한 지출에 대해 25%를 또 세액공제해 줘 실질적으로 면제하는 제도였다. 이 정책 덕분에 기술 중견기업은 세금을 거의 안 내고 R&D를 할 수 있도록 지원받았다. 이 제도가 2012년 한국이 GDP 대비 R&D 투자율 4.02%로 세계 1위국이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경제 관료의 상징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경제 관료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사실은 대중에 영합하면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는 표를 위해 대중에 영합할 수밖에 없으므로, 행정 관료가 버팀목이 되어 줘야 한다. 공직에 있으면서 전 국민이 반대하는 부가가치세 도입 같은 일을 할 때 괴로웠으나,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스스로 확신하며 진행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서도 민중을 따라가면 나라가 흔들린다고 했다. 학자도, 언론도 아닌 관료가 중심을 잡아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

‘MB노믹스’ 설계한 초대 장관… 4년 8개월 옥고 뒤 자전적 소설 출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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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전 장관은 1945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경남고, 서울대 법학과, 뉴욕대 대학원(경제학 석사)을 졸업한 뒤 1970년 행정고시 재경직에 합격, 국세청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1985~1988년 주미 한국대사관 재무관(뉴욕 주재)을 역임했다. 재무부에서 부가가치세 신설과 금융실명제 도입 실무를 담당하며 일찌감치 핵심 경제정책을 주도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IMF 구제금융 협상과 구조 개혁의 중심에 있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등을 진두지휘했다. 퇴임 후 2011년 3월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 행장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지인 회사 특혜 외압’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2021년 가석방된 후 소설가로 등단해 자전적인 경험을 담은 저서들을 출간하며 인생 2막을 열었다.

황비웅 기자
2025-10-2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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