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조 부호의 분노…루이비통 제국, 부자세에 반기 [핫이슈]

윤태희 기자
윤태희 기자
수정 2025-09-22 13:34
입력 2025-09-22 13:26

프랑스 여론 86% 찬성 vs 아르노 “경제 파괴”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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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은 최근 프랑스 정부가 추진 중인 초부유층 대상 ‘부자세’에 대해 “경제를 파괴하려는 공격”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AFP 연합뉴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은 최근 프랑스 정부가 추진 중인 초부유층 대상 ‘부자세’에 대해 “경제를 파괴하려는 공격”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AFP 연합뉴스


초부유층 겨냥한 ‘부자세’ 논란프랑스가 추진하는 초부유층 대상 ‘부자세’ 도입 문제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제안은 자산 1억 유로(약 1637억 원) 이상을 보유한 약 1800가구에 매년 2%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프랑스 정부는 재정적자 확대와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할 대안으로 검토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경제 파괴” vs “조세 정의 실현”유럽 최고 부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21일 영국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부자세는 프랑스 경제를 파괴하려는 좌파 이념의 공격”이라고 말했다. 아르노 가문은 포브스 기준 1570억 달러(약 219조 원) 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LVMH는 루이비통과 디올 등 세계적 럭셔리 브랜드를 거느린다. 그는 “나는 이미 프랑스에서 최대 납세자 중 한 명”이라며 “추가 세금은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투자와 자본 유출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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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경제학자 가브리엘 쥐크만(왼쪽)과 LVMH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 아르노는 주크만이 제안한 ‘부자세’를 두고 “경제를 파괴하려는 좌파 이념”이라고 비판했으며, 주크만은 “과학적 연구에 기반한 조세 정의”라고 맞섰다. AFP 연합뉴스
프랑스 경제학자 가브리엘 쥐크만(왼쪽)과 LVMH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 아르노는 주크만이 제안한 ‘부자세’를 두고 “경제를 파괴하려는 좌파 이념”이라고 비판했으며, 주크만은 “과학적 연구에 기반한 조세 정의”라고 맞섰다. AFP 연합뉴스


부자세 제안을 주도한 가브리엘 쥐크만 교수는 “나는 연구자일 뿐이며 조세 회피와 부의 집중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부자세를 통해 연간 최대 200억 유로(약 32조7000억 원) 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쥐크만의 멘토로 알려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아르노의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제자의 입장을 적극 옹호했다.

정치적 압박과 마크롱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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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국 총파업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얼굴 가면을 쓰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머리띠에는 ‘재정 체력(Fiscal fitness)’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국 총파업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얼굴 가면을 쓰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머리띠에는 ‘재정 체력(Fiscal fitness)’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세바스티앙 르코르뉴 총리는 내년 예산안을 준비하면서 사회당의 압박을 받고 있다. 반영하지 않으면 불신임 표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의 86%가 부자세 도입에 찬성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아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는 친기업 기조를 흔들지 않으려 하지만 재정적자와 불평등 심화를 방치하기도 어렵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우리 경제를 파괴하는 것은 부자세가 아니라 국가 지원은 받으면서 연대 의무를 거부하는 초부유층의 애국심 부재”라고 직격했다. 마린 톤들리에 녹색당 대표도 “부자세 논의가 막바지에 왔다는 증거”라며 “아르노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자본 이동의 불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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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아르노의 ‘탈프랑스’ 가능성은 글로벌 자본 이동과 투자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아르노의 ‘탈프랑스’ 가능성은 글로벌 자본 이동과 투자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프랑스 내부 갈등을 넘어 글로벌 자본 이동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초부유층과 기업 자본이 대거 이탈하면 투자 환경은 약화하고 금융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초부유층이 프랑스를 떠날 경우 예상 세수는 50억 유로(약 8조2000억 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한다.

만약 아르노 회장이 실제로 ‘탈프랑스’를 선택한다면 파급은 더욱 커진다. 아르노 개인과 LVMH 계열사가 내는 세금이 사라지면서 정부가 기대하는 세수는 크게 줄 수 있다. 파리 증시 1위 기업인 LVMH의 본사 이전은 투자자들에게 ‘프랑스 리스크’를 각인시키며 증시 자금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좌파가 “애국심 없는 거부”라고 공격하는 반면 우파는 “과도한 증세가 기업 탈출을 불렀다”고 반격하며 정국 혼란이 심화할 수 있다. 프랑스 사회는 단기적으로 좌파 논리에 공감할 가능성이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고용과 성장 둔화를 체감하며 갈등이 커질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스위스나 모나코, 싱가포르 같은 저세율 국가가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하면서 ‘프랑스 모델은 더 이상 부자와 기업을 붙잡아둘 수 없는가’라는 의문이 확산할 수 있다.

전망: 경제와 정치의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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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루이비통 매장 앞에서 개점을 기다리는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뉴시스
올해 1월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루이비통 매장 앞에서 개점을 기다리는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뉴시스


이번 논란은 조세 정의 실현과 경제 경쟁력이라는 두 축의 충돌을 상징한다. 아르노는 “경제 경쟁력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쥐크만은 “조세 정의 실현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고 맞선다. 마크롱 정부가 어떤 해법을 내놓느냐에 따라 프랑스의 경제 정책뿐 아니라 유럽 자본 시장에도 파장이 일 수 있다.

다만 LVMH 같은 럭셔리 그룹이 생산 기반까지 프랑스를 떠날 가능성은 작다. 루이비통·디올·셀린 등은 ‘메이드 인 프랑스’(프랑스산)를 브랜드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장인 공방과 기술은 수 세대에 걸쳐 축적돼 해외에서 대체하기 어렵다. 본사나 지주회사의 주소는 옮길 수 있어도 루이비통 가방에서 ‘프랑스산’ 표기가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부 화장품이나 주류처럼 해외 생산이 가능한 품목은 예외지만 핵심 제품군은 프랑스 생산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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